북측 응원단 머물렀던 블루원 사업장 인제스피디움
지난달 강원 평창과 강릉에서 열린 겨울올림픽(2월 9~25일)에 250여명의 북한 응원단이 방한했다. 2003년 대구 여름유니버시아드 대회 이후 15년 만에 방한한 북한 응원단은 강원 인제의 스피디움에 머물며 거의 매일 경기장까지 왕복 2시간이 넘는 ‘원정응원’을 펼쳤다. 응원단은 경기장을 찾는 시간 이외에는 숙소에 머물며 응원연습과 개인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숙소 종업원(180여명)들을 위해 공연도 했다. 일종의 사례였다. 응원단이 19박 20일 동안 묶었던 인제스피디움에서의 숙소생활은 어땠을까. 파인애플을 좋아하고, 한 번도 북한 여성들의 민낯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윤재연(52) 인제 스피디움 사장으로부터 경기장 바깥의 북한 응원단 생활을 들어봤다.
Q. 인제 스피디움이 숙소로 선정된 배경은 뭔가.
A.“정부에서 몇 군데 후보지를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건물이 완공(2014년 개장)된 지 얼마 안 됐고, 숙소가 민가와 떨어져 있어 보안에 유리했던 것 같다. 일부에선 크루즈 선을 숙소로 사용한다거나, 강릉시에서 무상으로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남북 관계자들이 (1월 25일) 시설을 둘러보고 최적지로 꼽았다. 막판까지 선정되지 않을까 봐 가슴 졸였다”
Q. 북한 응원단이 묵으면 다른 영업을 못할 텐데.
A.“아버지(윤세영 태영그룹 회장)가 강원도민 회장을 지내셨다. 강원도가 삼수 끝에 2011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올림픽을 유치할 때 현장에 계셨다.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작은 힘을 보냈는데,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었다. 숙소로 최종 결정됐을 때 아버지가 ‘혹시 사고가 발생하면 모두 너 책임이다. 네가 현장에 가서 챙겨라’고 하셨다. 25일 동안 사업장에 머물며 먹거리부터 이부자리까지 불편함을 찾아다녔다.”
윤 사장은 북한 응원단이 머문 동안 하루 4시간도 못 잤다고 했다. 윤 사장은 월ㆍ화요일은 여의도 본사에서 근무하고 수ㆍ목ㆍ금요일은 경북 경주와 상주, 경기 용인, 인제를 교대로 찾는다. 통상 한 달에 사나흘씩 각 업장을 머무는데 지난달엔 인제 업장에 올인했다고 한다. 정부는 인제 스피디움이 보유한 호텔(154실)과 콘도(114실)를 통째로 임차해 사용했다. 하지만 임차료는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 응원단이 묵었던 강원 인제스피디움 전경. 응원단은 오른쪽 콘도에서 생활했다. [사진 인제스피디움]
Q. 북한응원단에 대한 느낌은.
A.“응원단 여성들 모두가 165㎝ 이상이었다. 얼굴도 뽀얗더라. 한국 여성들이 입는 옷을 입히면 전혀 북한 여성이라고 구분을 못 했을 거다. 방에서는 개별로 연습하는 시간 외에는 전혀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각기 다른 기관이나 학교에서 선발한 탓인지 처음엔 서로가 좀 서먹서먹해 하는 느낌이었다. 식당으로, 버스로 이동할 땐 항상 2열로 움직였다. 하물며 부페식인 식사를 가지러 갈 때에도 줄지어 다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손을 잡고 다니고, 재잘거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이나 남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Q.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뭔가.
A.“나도 해외 출장을 더러 다니지만 20일간 집을 떠나 생활한다는 게 쉽지 않다. 먹거리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사실 북한을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북한 음식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정보가 부족했는데 북측 사람들이 뭘 해달라는 요구도 없었다. 그들의 취향을 찾는데 어려움이 컸다. 다른 업장에서 요리사 등 에이스 60명을 차출해 끼니마다 뭘 좋아하는지 파악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Q. 뭘 좋아하던가.
“끼니마다 메뉴를 달리했다. 그런데 의외로 디저트로 내놓은 파인애플이 히트였다. 순식간에 없어지더라. 아이스크림과 초콜릿도 즐겼다. 단맛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20대 초반의 여성들이었다. 스무살인 내 딸 생각이 나더라. 식사 중에선 김치말이 국수나 김치찌개, 부대찌개와 같은 걸 좋아하더라. 해산물 요리도 즐겨 먹는 메뉴였다. 손님 대접한답시고 스테이크를 내놨는데 거의 손을 안 대더라. 고기의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약간 덜 익혀(미디엄 웰던) 육즙이나 핏기가 있었는데 거북스러웠던 모양이다”
Q. 인상적인 부분은.
A.“250여명의 북한 응원단의 민낯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밤늦게 경기가 끝나고 새벽 1시에 숙소에 와서 밥 먹고, 5시 조금 넘어 식사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화장을 하고 나타났다. 피곤할 만도할 텐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더라. 객지에 나와서 부족한 게 많았을 텐데한 번도 뭘 요구하지 않았다. 타월이나 세탁물들을 내놓으면 세탁해 주겠다고 했는데도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개인적으로 해결한 것 같다. 물품을 아껴서 사용하는 모습은 나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원단은 콘도를 숙소로 방마다 4~6명씩 사용했다. 스피디움 측은 응원단 도착 전에 방마다 인원수대로 타월을 비치했다. 타월과 샴푸, 린스 등 여성들이 많이 소모하는 품목은 복도 양쪽 끝에 별도로 쌓아 두고 마음껏 사용하라는 안내문도 붙였는데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샴푸라는 말이 낯설까 봐 탈북자에게 북한말을 문의해 ‘머리 세제’라고 써놓기도 했다.
Q. 종업원들도 북한 사람들을 처음 접할 텐데 문화 차이로 인한 문제는 없었나.
A.“응원단이 오기 전에 김영수 서강대 교수를 초빙해 전 종업원을 대상으로 북한 주민들을 대하는 방법을 교육받았다. 우리는 서비스업이다 보니 손님들이 편히 계시다가 가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인 얘기를 삼가도록 했다.”
Q. 아쉬운 점이 있다면.
A.“북한 사람들이 자존심이 세다고들 한다. 그런데 하루는 북한 대표가 찾아와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며 종업원들을 위해 공연을 해주겠다고 했다. 뜻밖이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래서 우리도 스피디움의 자동차 써킷을 이용하도록 권했지만, 일정상 어렵다고 하더라. 이번을 기회로 남북 간 간극이 좁혀졌으며 좋겠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제스피디움에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사람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인데 북측에서도 다시 찾아왔으면 좋겠다. 남보다 더 빠르게 미래(통일)를 준비하고 볼 기회였다”
윤재연 블루원 사장. 정용수 기자
☞윤재연 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스위스와 미국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했다.
신라호텔에서 호텔리어 생활을 2년 하다 태영그룹의 호텔, 리조트 부문인 블루원의 사장을 맡고 있다.
자동차 써킷과 숙소가 있는 인제 스피디움은 블루원의 사업장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기사원문 http://mnews.joins.com/article/22411367#home